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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Leben

2017년 4월 6일의 이야기


# 실소


실소가 터져나왔다.


지난 주 월요일에 네번째로 방문한 병무청.

신검 후 오랜 기간이 지나 다시 신검을 받아야 해서 

대방동으로 향했다.


여의도를 거쳐서 대방으로 향하는 그 길은 꽤나 불쾌한 길이었다.

비도오고 어두웠던 기억


초등학교때부터 달고 살아온 오랜 질병 하나가 이날도 결과를 받지 못하게 했고

그래서 다음날 나는 또 병원으로 서류를 떼러 갔다.


이 귀찮고 에너지가 드는 이 과정. 

근 7년 동안 도대체 몇번을 병무청과 병원을 오갔는지

이번엔 꼭 서류 보내고 나오는 결과에 따라 이 지긋지긋한 일을 끝내리라.

라고 생각하며 지난주 우체국으로 향했다.


오늘 오전

늦게 일어나 티비를 틀고 무심하게 앉아있는데

등기 우편 하나가 도착했다.


병무청이었다.

뭐 또 뻔한 결과가 나왔겠지 하고 편지를 뜯어 결과지를 보았는데


적혀있는 숫자 '4'

적혀있는 문구 '사회복무요원'


왜 이제서야...

내 인생을 갖고 장난 친 것인지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지나간 시간 군복무로 인해 이리저리 고생하고 고민한 시간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래도, 그 시간을 보상받았다는 생각과

사실 깊게 자리잡고 있던 어학연수 후의 삶에 대한 불안과 부담감이 확 줄었다.

불안과 부담안에서가 아니라

감사와 즐거움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주신 선물인 걸까



# 첫 프랑스인 친구


그의 이름은 디미트리

취업을 하면서, 기본 문법도뗐겠다. 프랑스어를 본격적으로 공부 하고 싶어서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서울서 과외하는 프랑스인들을 찾아서 카톡도 하고

각각 다른 3명과의 미팅 결과, 나의 튜터로 결정한 디미트리.


그로 결정한 근거로는 

친구와 같은 친근함과 자유로운 소통방식이 

내가 원하는 튜터링 방식과 가장 일치했다.


총 세번을 만났는데,

책임감 있게 임해 주었고

공통점도 많고 이야기도 잘 통해서

좋은 결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사정으로 인해

이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직 하지 않은 튜터링 비용의 반을 환불받기로 했다.


그는 메세지로도,

전화로도

늦어져서 미안하다며 돈을 꼭 붙여주겠다고 했다.


그 결과

오늘 오전 10번의 통화시도.

매번 통화 연결음이 딱 두번 울리고, "연결이 되지않아.."


나의 첫 프랑스인 친구는

이렇게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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