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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Leben

신앙에 대한 고찰(?), 생각의 파편들 모음

물론 모든 생각이 정확히 한치의 오차도 없이 표현 될 수는 없겠지만, 이 놀라운 과정, 순간의 찰나에 이루어지는 사로를 기록하는 것은 재미난 일이다. 생각의 흐름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파편들이 가지는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 또한 꽤나 즐거운 일이다. (나만 그럴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요즘 [만들어진 신], 실존주의와 그리스 철학(주로 키르케고르, 사르트르, 니체, 소크라테스) 의 역사와 그 사고들,  Religious sense 를 읽으면서 성찰한 내 마음과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다.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 해 놓아야, 잃지 않을테니까.

Gio 에게 보낸 메일에서 언급했던대로, 내 가치를 또는 진짜 의미(의미에 대한 존재 여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고,
이 욕구가 지금 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렇기 때문이다 라고 답할 수 있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나’를 찾고자 ‘나’의 위치를 이해하고자 ‘나’의 삶을 향한 자세는 어떤것이 되어야 할까 하는 이것들에 대한 알고자 하는 욕구가 크고, 이 길에 들어섰을 때 기쁨, 환희, 슬픔, 절망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깊은 미학적 감정들을 가질 수 있다. (참으로 아름답다. 이 감정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행복’ 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실로 내 비루한 관점이나 생각들을 거두어내고 마주하는 현실과 만남이 나를 나로서 더 서게 한다. 그 속에서 배우고, 깨진다. 그 만남의 도구가 요즘은 책과 사람이다.

앞서 언급한 세 책은 공통적으로 지금의 내 삶을 응원 해 주고 지지 해 준다. 심오하고 깊은 어떤 ‘것’을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 할 수 있도록 내 사고를 열어주고 질문을 던져주고 눈을 뜨게 해 준다. 

서로다른 철학적 길을 제시 해 주지만 그 깊은 곳에는 한가지 열정 또는 열망이라고 불리우는 그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무언가가 인간 본연의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철학자도 잇고, ‘신’ 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하기도 하며 그저 유전적 인간의 성질이라고 하는 과학자도 존재한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어떤것으로 표현이 되던 간에 그 ‘열정 또는 열망’ 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을 진화시켜 왔으며 우리를 살게 해 왔다 라고 나는 본다. 하지만, 오랫동안 우경화된 내 사고에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한가지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꼭 기독교만이 그 채워지지 않는 열정을 채우는, 또는 그 열정 본연의 것이 되는 것인가?’ ‘오직 유일신 하나님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만이 모든 세기를 거쳐온 인간 속 열정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인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피상적인 것, 즉,, 현세를 꽉 잡고있는 권력=돈 이라는 매서운 거대집단의 이념과 신념은 ‘적어도 나’ 는 채우지 못 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 사례들을 나는 학습 해 왔고 눈으로 보았고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 이념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을 이제는 무작정 비난하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상황속 최선의 ‘결정’을 한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결정 또는 선택이 진정 그들이 내렸는지는 두고봐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그 범위를 어디까지 볼  인가에 대한 문제도..)
중요한것은 지금의 ‘나’ 는 그 가치들을 지양하고 허무한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나를 채울 수 없다.

최근 느낀 열정이라 불리는 ‘무언가’ 를 채우는 것은 ‘사랑’ 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모든 인류를 관통하는 위대한 가치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어 가는 방법이 오로지 한 가지! 기독교! 라는 것인가!?
[만들어진 신] 을 저술한 리처드 도킨스라는 과학자와,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였던 니체는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비판하고, 노예도덕이라고 까지 여긴다. 한 때 나름 깊은신앙(?) - 만들어진 신앙 이라고 생각하는 - 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두 인물의 비판이 무조건적인 비판을 위한 비판이며 생산성 없는 비판으로 더이상 여겨지지 않는다. 내가 성경에 시간을 들인만큼 그들의 의견도 동등하게 여기고 있다. 

물론, 이들의 논리에도 허점이 있고, 예수님의 진실된 가르침에 대한 깊은 고찰이 빠져있다는 점을 그들의 논리를 볼 때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가르침이 진실된 가르침을 짓누르는 또는 짓눌러 왔던 종교로서 기독교는 단연 비판받아 마땅하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그 길, 열정 또는 열망이라 불리는 무언가로 향하는 그 길은 오직 예수님을 통한 길 뿐인가? 
즉,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만약 신앙없이도 깊은 삶에 자신을 관여 할 수 있다면? 실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면? 존재가 존재로서 인식되고 더 깊은 의미로서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참여한다면? 배움과 질문을 끊이지 않는 인간 본연의 자세를 삶에 존속시켜 나간다면? 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에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길이 된다는 것인가?
역사를 통해 반증된 기독교의 모순과 그로 인한 끔찍한 결과들(전쟁, 살해 등..)을 보면서도 하나님만이 예수님이 길이라고 외치는게 가능할까? 나는 요즘 의문이 든다.

스스로 모순되게, 아직까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은 예수는 사랑의 어떤 모형이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음에 의해서)
한 가지 나에게 다짐하는 것은.. 내 생이 끝날 때 까지 나의 비루한 지식과 경험으로 단정하는 일이 없으며 더 살기위해 도전하고 배우기 위해 나아간다. 이 열정을 더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나의 삶을 ‘선택’ 해 나갈 것이다. 
창조하고 부서지고 배우고 서고 넘어지고 그리고,, 함께하자.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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