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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Leben

How live your life is your business

나는 그저 여러 가치들을 두고 의심 해 보고 충돌시키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그 과정 속 단면의 생각을 이야기 한 것일 뿐인데, 더 이상 나를 포장하고 숨기고 싶지 않아서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드러낸 것인데,

누군가에게 내 편이 되어달라고, 나의 생각에 동의 해 달라고 또는 설득을 위해 한 이야기도 아닌데, 

검열 아닌 검열을 당했다. 역시나 이미 검열이 시작되었으므로 사유의 자유는 사라진 것이다.

예수님이란 진리가 과연 인간에게 필요한 것일까? 

예수님을 통한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정립과 종교로 만들고 종교도덕을 구체화한 사도바울의 그 모든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

예수님이 본이 되신 삶과 사랑의 가치들을 지니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꼭 진리라고만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들...


"나를 부르신 분, 소망을 주신분이 하나님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라고 이야기 했던 나에게 선을 넘었다고 했는데, 그 선은 누가 정의한 걸까? 나는 나의 선을 정의한적이 없는데, 왜 선을 넘었다고 평가 하는 것이지. 스스로 세운 선은 자신이 지키면 되는 것이지 왜 남에게 까지 선을 강요하는 것일까.

이런면에서 보았을 때 감리교 목사님이 예수님만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 라고 한 발언 때문에 교단에서 쫓겨났다고 하는 극단적 사례가

전혀 극단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기본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신앙, 믿음. 결코 어떤 논리도 그것과 충돌 할 수 없겠다 라는 절망감 까지 들게 하는 그 믿음. 이야기가 안 통한다고 해야할까. 오히려 인간간의 깊고도 심오한 근본적 질문에 관한 대화를 막는 수준까지 이른다.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진리는 소외자를 만든다.


그치만,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 해 보면 그게 또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니체가 언급한 힘으로의 의지일까. 그들도 각자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고 다다르고자 하는 깊은 욕망이 있을 텐데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 믿음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믿음을 흔들만한 이벤트가 온다면 그것을 쳐내고 막는 것 또한 그들의 역할이자 몫이니 그들의 반응은 그들의 잘못된 인격과 도덕성이 아닌 맹목적 신앙에서 나옴을 인정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이 비판에서 자유 할 수 없는 것은 사랑과 포용의 가치를 전한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모순된다는 점에 있다. 

이 맥락에서 내가 한가지 간과한 점은, 내가 믿음을 흔들 어떤 이벤트로서 작용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 했다. 이기적이었다.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 해 주기를 바랐었는데(그냥 세계-내-존재로서 존재하는 내 존재로 공동체의 모임에 참여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 공동체 존립자체가 믿음에 기반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던 것이고 그럴 수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충분히 나의 용기와 개방적이었던 태도에 잘못이 있다는 점을 수긍하게 된다. 

또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니까, 내 탓으로 돌릴 이유조차도 없다. 

두 사물, 물질이 충돌하면 어느 방향과 어떤 에너지의 방향으로든 변화를 하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공동체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지도 않고, 공동체를 와해시킬 생각은 더더욱 없다. 

지금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공동체라고 또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부딪혀 보고 사랑 해 보고 하는 일은 누가 뭐래도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 배움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의 사유의 과정에 이르기 까지 인도해준 공동체도 바로 이 공동체 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의 선택적 결론은

지금의 상태에서는 공동체에 나가지 않는 방향으로 기운다. 

왜냐면, 이 과정중에 있는 나를 더이상 숨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유의 검열을 거부하기 때문에, 공동체에 '나쁜'(그들이 칭하기에) 영향력을 주고싶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그 공동체와 그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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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으로, 한 곳에 뿌리를 박고 깊이를 갖게 되면 더욱더 시야가 넓어지고 지성으로 이른다는 식으로 언급 하신 것 같은데,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 이다. 근데 그 뿌리는 기독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안으로 나는 다른 종교와 믿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바이다. 


누구에게나 뿌리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 뿌리를 찾는 과정에 있을 수도 있고, 뿌리채 뽑아버릴 자유까지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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