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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Leben

학교 사회복무요원 1년




처음으로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화를 냈다. 일년의 과정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때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학교가 분주하다. 그에 따라서 나도 이번주에 이곳저곳 불러다니면서 일을 많이했다. 


한 주를 보내며 많이 배웠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교사 삼아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 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에 반응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나를 경멸할 수 있는 부분도 찾게 되었다. 


먼저, 나를 화나게 했던 순간들을 기록해보면,

나를 필요할 때 쓰고 버리듯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도 정해진 업무가 있고 소속된 부서가 있는데, 이곳 저곳 필요할 때 불러다 쓴다. 그래서 1층-4층까지 넘나들며 갖가지 업무를 맡고있다. 좋은점이라고 하면, 여러 업무를 통해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내가 이 장점에 대해 인식하지 못 하고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일때에는 부정적인 면에 집중하게 되어서 자존감이 무너진다. 


개중에는 일을 시킬 때 조심스럽고 감사한 말투로 일을 건네주거나 마치면 감사하다는 인삿말로 보답해 주시는 선생님들도 계신 반면에, 평소엔 말 한마디 안 하던 분들이 필요할 때 와서 가식적인 얼굴로 일을 건네줄 때에는 웃는 얼굴에 침뱉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내 성격상 그 때 거부하지는 못하고, 도와드려야 할 건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빨리 일을 해치우고 내 할 것들을 하려고 한다. 잡무가 많은 곳이고, 지원업무가 내 업무의 영역이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정도가 지나칠 때에는 다이아몬드 구조에서 가장 아래층에 내가 존재하고 그 무게들이 나에게 쏠린다는 느낌을 배재할 수가 없다. 언제나 대체가능한, 그런 약하고 생명력 없는 존재. 이건 사실 학교 자체의 문제이지만 이미 커다랗고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돌아가는 수레바퀴에서 해답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스스로 훈련의 공간삼아 내 자존감을 테스트하고 있는 중이다. 


때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면서.


이번주엔 터저버렸다. 

내가 1층에 내려가서 업무를 하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근을 가고 자리를 이동하는 선생님들은 본인의 쓰레기를 교무실 한켠에 쌓아 두었다. 이번주 초에 그 모습을 보고는 ‘생각’이 있다면 본인의 쓰레기는 ‘스스로’가 버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것일까. 화요일, 수요일이 되어도 그 쓰레기는 더 쌓여져만 갔고, 목요일 아침 어느 한 선생님이 1층에 내려와 나에게 또다시 웃는얼굴로, 3층 분리수거와 쓰레기에 대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저 하기싫어요. 였다. 정말 처음으로 내뱉어 봤다. 그 선생님에게 내뱉은 말들을 적어보면,


“왜 맨날 본인들 쓰레기를 본인들이 안버리고 제가 3층, 4층 다니며 혼자 버려야 해요? 제가 웬만하면 선생님들 도와드리려고 하는데, 이건 열받아서 못하겠어요. 본인 쓰레기는 본인이 가져다가 버려야지 그렇게 쌓아두면 결국 버리는건 나고 . . . 물론 선생님같이 안그런분도 계시지만, 몇몇선생님들이 그렇게 하시는거 보면 화가난다. . . .”


이렇게 화 내는 도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애딴분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사과를 드렸다. 아침부터 화를내서 죄송하지만, 이건 제가 도저히 못받아들이겠다고. 사실 나에게 찾아온 그 선생님은 여느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본인일은 본인이 직접 하시고 어쩔 수 없을때에 업무 지원을 요청하시는 몇 안되는 그런 분이셨다. 물론 이때의 상황은 상대를 봐가며 화낼 상황은 아니었기에 화를 낸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그 분은 아침부터 나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어야 한다는 점에서 죄송한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상식이 통하는 분이였기에 내가 하는말을 이해한다고 하셨다. 


교사들이 모인 집단인 학교에서는 나름 수평적인 구조가 형성되어있다. 근데 그 수평적 구조는 그들만의 리그고, 그 아래 계약직이나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수평의 중심을 지탱하기 위한 무게받침이 필요하다. 쉽게말해서, 하기싫은 일은 밑으로 다 내려온다. 이해한다. 백번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래도 본인 쓰레기는 본인이 치워야하는거 아닌가 싶다. 여기서 배울점을 발견했다. 좋은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체계적인 시스템도 거대한 자본의 투자도 아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자기가 해야 할 몫에 대해 스스로 노력하며, 자기반성할 줄 아는 개인이 만든다는 것을. 

그래서, 언제나 나 스스로부터 돌아보며 경멸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적어도 그런 선생노릇하는 부류의 사람이 되는것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듯 미세먼지가 흩날리는날에 10개가 넘는 꽉 찬 20L 쓰레기봉투, 무거워 들기도 힘든 폐지가 버려져있는 수많은 박스들을 수레를 이끌고 여러번 왔다갔다 하는 중 이었다.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눈은 먼지때문에 퍽퍽해져가고, 나쁜 공기 때문에 기분도 더러웠다. 이렇게 쓰레기와 폐지를 가득담아 혼자서 낑낑대며 학교 문밖을 나서고 있는데 어떤 선생님 한 분이 오셨다. 분이라고 부르기도 싫다.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싫다. 어떤 인간 쯤으로 해두자. 그 인간이 나에게 와서 하는 말은 지금 바쁘냐고, 자기 이거 서류 구멍뚫고 철해야 하는데 해줄 수 있겠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여기서도 ‘상식’에 대해 또 언급하게 되는데, 남이 그렇게 일을하고 있으면 도와준다는 말이 먼저 나오거나 이게 너무 큰 기대치라면, 다음에 다시 와서 물어보는게 맞지 않나 싶다. 나는 어이가 없기도 했고,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 가던길을 멈추고 들었다. 


지금 안된다고 하니까 그럼 자리에 두고 갈테니 내일 출장을 가야하는데 문서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나도 웃는 얼굴로 아 그거 기계 별로 어렵지 않으니까 행정실 가서 해보시라고 했다. 계속 자리에 놓고 간다고 하길래, 본인이 가서 해 보시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순간 정색하는 그 인간의 표정. 그러곤 내뱉는다는 말이 자기 지금 바쁜데 해달라는 식의 투정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욕한바가지하고 꺼지라고 하고 싶었지만 저도 바쁜데요. 하고 가던길을 갔다. 


상황을 복기하며 나의 잘못된 점은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아니,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이 두 상황을 보면 일년간 참고 있던 나의 분노가 폭발했던 시점이었지만 언젠가 한번쯤은 필요한 사건이었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을것이다. 


이 무게에서 벗어나기 까지 일년도 채 안남았다는 점이 희망의 물꼬를 틀어준다. 

적어도 자신있게 이 경험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많이 배우고 있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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