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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남미

여권분실


아니, 도대체 여권이 발이 달렸는지

가방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것이 사라졌다.


정말 머리를 풀가동하고 내 동선을 계산해 봐도 여권을 사용한적도 없었으며 

그저 한번 꺼내서 집어넣고, 가방을 열어 짐을 꺼낸 장소는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집에서였다.

카페와 집에서 흘렸다면 이미 찾았을 터이고, 지하철에서는 여권이 툭 하고 떨어졌으면 알아챘을 터인데

도저히 나의 상식선 에서는 왜 없어 졌는지 이해불가다. 이렇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다니. 

조금 어안이 벙벙 하기도 하다.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나는 가끔 꿈을 꾸면 이렇게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린 꿈을 꾼적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항상 꿈에서 깨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과 함께 다시 잠에 들곤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나설 길이 멀어서 일찍이 일어나 어제 비자를 발급받은 따끈따끈한 소중한 여권을

꺼내놓고 집을 나서려했는데. 가방을 뒤져도 도저히 나오질 않았다. 

아직 비몽사몽 이어서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엄청나게 되뇌었지만 현실이었다.


처음엔 눈물도 좀 맺히는가 싶더니 어이가 없어서 욕이 튀어나올 정도 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나갈 시간이 되자 머리속으로 여권을 분실 했을 때 실현가능한 시나리오를

대충 계산하고 집을 나섰다. 

근데 아마 이렇게 집을 나서지 않았으면 정말 이 상황에 빠져서 아무 것도 못하고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을 수도 있겠다.


지하철에 올랐다. 다시 한 번 가방 안을 확인 해 보는데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무언가를 끄적여야 그나마 분리되어가고 가루가 되어가는 멘탈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잃어버리게 된 경로, 왜 잃어 버렸는지에 대한 추측, 등을 끄적이다가.

이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감정적 이던 것이 객관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단 마음을 잘 추스리고 집에서 나온 나를 칭찬했고,

부모님이 깨어있었는데 평소에 나라면 왈칵 내 감정을 쏟아내고 전가 시켰을 텐데

오늘은 침착하게 대처를 했다. 아무일 없다는 듯 잘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 순간에 내가 취해야 할 행동과 배울점이 무엇인 가를 적기 시작했다.


남미에 가서 사용할 많은 현금과 도난의 대상이 되는 한국여권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안일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 경각심을 깨우는

여행의 시작이 되었다. 남미여행 카페에가서 여권분실을 키워드로 검색 해 보니 남미 현지에서

잃어버린 분들도 상당했다. 그분들을 보며 한켠에 안도감도 느꼈고, 한 주의 시간이 남았으니

잘 해결될거라는 믿음으로 전환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잃어버린것을 알아서 정말 다행이고,

아침에 가방을 뒤져볼 생각(?) 이 들었던 것에 대해 감사했다.


감정을 몰아내고 객관화된 사실을 가져오니 평안함을 얻게 될 뻔 했으나

또 분실한 여권을 갖고 그 정보를 입력해 발급한 비자나 비행기표 버스표 등이 있어서

마음의 분열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 하루종일 마음의 분열을 메꾸고 다시 분열을 내고 등의 

일을 반복했다. 


다행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좀 정리가 되어서 이 사건에 대한 감정과 객관적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전능자의 그늘안에 거하라고 이야기 해 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푹 자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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