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을 만났다.
여행을 다녀오고, 설 연휴를 보내고, 하루종일 연구실에서 일을 하고 나니
2월이다.
사실 많이 조급하고 힘들 줄 알았다.
그래서 여행에서 더 많이 아팠던 것 같다.
돌아갈 생각을 하니 모든것이 스트레스 이었기 때문에.
근데, 조급함 보다는 평안이 크다.
그래서 이 평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기록하고 싶어졌다.
# 아픔을 겪게 하심
사실 여행 중 1/3은 아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산지대에 가서는 고산병에,
음식 잘못먹고 물갈이하고,
병인가 의심되기 까지 했던 통증까지
이 시간동안 나는 많은 글들을 쏟아냈다.
아플때마다 내면에 더 집중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참 좋은 훈련의 시간이었다.
첫째, 아픔이. 물리적 아픔이 나의 내면을 침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예를들어, 예전 같았으면 여행지에서 아픈 나를 자책 하기도 하며, 남과 비교하기도 했을 것이고,
손해를 본다는 생각까지 했을 것이고. 이 부정적 생각은 깊이를 더해가 나의 내면을 아프게 했을것이다.
그치만, 이번에는 그 깊이를 더하지 않고 부정적 생각은 인정하지만 나의 내면을 지키는 연습을 했다.
왜냐하면 그 동기와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픈것은 그저 하나의 상황일 뿐이고, 그 상황에 나의 내면이 흔들릴, 침범 당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부정적 에너지를 흘려보내지 않기.
이것은 9월에 있었던 유럽여행에서 처음(?). 그만큼 아주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알게 되었는데.(아마 나의 거울같은 친구와 함께였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나의 부정적 기운이 느껴질 만큼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배려하는게 아니라고 했다.
이 사실을 알기 전에는 나름 배려라고 나의 아픔과 상처에 휩싸여 있을때 했던 행동들이 사실은.
그 행동의 내면을 살펴보면 더 나의 아픔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동행한 친구에게 아픔을 전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실은 아직도 어렵고 잘 되지 않지만.
셋째, 인내하는 법을 배우기.
정말 나는 인내하지 못 한다. 인내에 관한 주제로만 아주 긴 분량의 글을 쓸만큼 왜 나는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 인가에 대한 과거의 일들과
지금 현재의 행동을 더 자세하게 분석 할 수 있고, 그렇게 하고 싶기도 하다. 음. 이 문장도 참 인내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무튼, 아픔이 가시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을 주심에 참 감사하다. 확실한 것은. 끝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안이 온다는 것.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 확실하고도 명확한 주님이 세우신 명제에 닿으니 천국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에수를 믿는 순간 이 아픔의 세대에서 내가 겪는 죄의 사슬과 아픔은 끝나고 내면에 천국이 임하는 것.
예수를 믿고 인내하며 이 생의 끝에 도달 할 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시는 것.
그리고 예수님 오실때에 천국이 임하는 것.
그냥 아픔이 지나고 나서는 것처럼
천국은 그렇게 임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넷째, 난 한없이 약한 존재라는 것.
맞다. 진짜 아프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그냥 정말 나는 약한 존재다.
조금만 아파도 신경질적으로 변하며 멘탈이 흔들리는.
조금만 내 범위에 벗어난 상황이 발생하면 주님을 홀딱 잊어버리는. 그런 약하고 악한 존재다.
후.. 한숨만 나오지만, 더 강해지려고 했고, 더 혼자이고 싶었던 나에게 주시는 메세지 인 것 같다.
# 예술
설 연휴 첫날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야 해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이전부터 나의 취업에 대해 어떤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을 해왔지만 막상 실천하려고 하니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서
글로 먼저 이 과정을 시작하는 소감을 끄적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취업은 과정이다.
예술인 내 삶에 있는 그저 한 부분이되는 과정일 뿐이다.
경계를 치고 내 삶으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아주 잘 녹여내는 과정으로 임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Design Resume 를 작성 해 보기로 결심했다.
구글링을 하던 도중 어떤 문구를 봤는데 참 인상깊었다.
"이력서는 당신의 삶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디자인 작업이 될 것입니다."
나도 내 이력서에 내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
죽어있는 글이 아니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색과 형태 폰트 배치 등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어? 재미있겠는데? 그리고, 이 과정이 내가 지향하는 예술의 한 작업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까지 도달했다. (스스로 뿌듯하고 대견하다. 근데, 지금 내용을 채우는데 난항을 겪고있다는 건 비밀)
실패해도 과정일 뿐이다.
아니 근데 사실 실패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는 것이다.
# 반석위에
설연휴 동안 포트폴리오 작업을 마무리 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내용을 채우는게 어려워서 회피했다. 음. 틀과 디자인은 해 놓았지만,
회사를 알아보고 실제로 현실의 몇 제한점들이 보이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다시 부정적 에너지에 집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부정적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우리는 곧바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예수님때문에. 지난번 유럽여행때 참 많이 싸우고 훈련 했던 부분이었다.
오늘은 이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조급해지고 불안한데 교수님이 일까지 시키셔서 부정적인 발걸음으로
나아갈 뻔 했으나.
경의선에서 갑자기 펜과 노트를 들고 드는 생각을 써내려가게 하셨는데
그 내용인즉슨,
더 이상 부정적 삶과 사고에 남겨져 있고 지속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비록 내가 염치 없다고 느끼고 스스로 자괴감이 많이 드는 부분이지만
내 생각은 생각일 뿐. 예수님은 내가 나아 오길 간절히 원하신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취업과정에 임하는 행동보다, 말씀과 기도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연약한 나를 이끌어갈 그 기반이 세워지는 것이 먼저다.
더하여 페루에서 갔던 오아시스 마을의 사막에서 느껴진 모래의 감촉이 생각났다.
영상으로도 남겨놓았는데, 모래를 한움큼 쥐어서 손바닥을 펴보면 모래는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흩어져 버린다. 아주 쉽게.
모래를 한움큼 쥘 때에는 흡족한 느낌으로 움켜쥐지만, 더 느끼고 싶어 손바닥에 놓으려고 해도
흡족은 곧 실족으로 변한다. 잃는 것처럼 스스륵 가버린다.
이처럼 곧 무너질 모래성을 쌓으려했던,
그리고 그 형태가 조금만 갖춰져도 스스로를 흡족해 했던,
근데 금방 무너져버려서 실족 했던,
모습에 반성하며
반석위에 쌓아야 한다. 는 결심을 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에 알람이 울리며 말씀이 땋! 하고 떴다.
그 말씀은
시편 62편 6편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확인을 눌러 그 이후의 말씀을 읽어보니
나의 마음을 위로 하시며 나의 마음 밭에 심겨진 말씀.
시편 62편 8편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시편 62편 10편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아멘